leader's column

Economist Things to Learn from and to Avoid in Hong Kong

December 11, 2017

  •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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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r. Jong Nam Oh

I visited Hong Kong from November 6 to 10 with the invitation of the Hong Kong SAR Government under the “Sponsored Visitors Program (貴賓訪港計劃)”. This program began in early 1980s with the intent to make friends of Hong Kong by inviting the British MPs before the negotiation for the return of Hong Kong. The program was evaluated to have contributed to derive “the Sino-British Joint Declaration” in 1984, which allowed Hong Kong to maintain a high-level of self-governance, capitalism, and lifestyle for 50 years in the name of “One Nation, Two Systems”. Therefore, this program was determined to continue even after Hong Kong was returned to China and the opinion leaders from various countries are still invited to Hong Kong under this program.  Although the program’s slightly long schedule was somewhat burdensome for me, I managed to spare time to accept the invitation. I wanted to learn the secret of making Hong Kong ranking No.1 in the world for the past 22 years consecutively since 1995 in terms of the Index of Economic Freedom set by the US Heritage Foundation. Before meeting with the Hong Kong Authorities, I had an opportunity to meet with representatives of Korean banks doing business in Hong Kong with the help of the Korean Consul for Finance and Economy. The common opinion of those representatives was that Korean expatriates can hardly accumulate expertise or form networks due to their headquarters’ HR policy to rotate the assignment every 3 years. They also said that a system to grant another opportunity to draw on past failures needs to be built.  The first meeting with the Hong Kong Authorities was the meeting with executives of the Development Bureau in charge of Hong Kong’s infrastructure planning and development including Lantau development plan. While listening to their development blueprints including re-development of the old international airport site, I was reminded of my memories of a junior economic bureaucrat as a team member of the taskforce formulating “the 4th 5-Year Economic Development Plan” in 1970s. Subsequently, I had a meeting with the Chair of Hong Kong’s Harborfront Commission and also visited the City Gallery. The common theme I learned from the meetings was a human-friendly development. It was an idea to ponder over the developments, which do not alienate people but focus on them and enhance their happiness.   Currently, the Kowloon Peninsula east, which previously had an airport, is being developed to the 2nd Central Business District (“CBD2”) and it would be larger than the existing CBD upon completion. And the west area is being developed to the 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Upon visiting the actual sites, those developments were also focused on the eco-friendly development with an emphasis on the environmental conservation. Thanks for the helicopter tour offered by the Hong Kong Government Flying Service, I could make a tour of not only the Kowloon Peninsula but also the border area of the mainland, which enabled me to understand the big picture of the development strategy for the entire Hong Kong. In addition, I got an unexpected idea for the Saemangeum Project in Korea for which I hold a position of Co-Chairman.   To me, the most interesting points of this visit to Hong Kong was the “Rule of Law” I learned from the Department of Justice and the “Anti-Corruption” from the Independent Commission Against Corruption(ICAC). Hong Kong’s greatest strength, which cannot be emphasized enough, is the “Rule of Law” and “Integrity”. The Hong Kong Government is designing the City Plan based on a forecast that the population of 7.34 million as of 2017 will reach its peak in 2043 with 8.22 million and the current number of households of 2.51 million will reach its peak in 2046 with 2.97 million. If we learn one thing from Hong Kong, it should be the enhancement of predictability for the people and the creation of a transparent society without any corruption through the consistent enforcement of law. When I was having lunch in Hong Kong with the East Asia Regional CEO of the Japanese Mizuho Financial Group, which recently opened a branch office of its security company in Seoul, I had this thought out of the blue: Where is the Korean finance, which used to dash to become the financial hub of the Northeast Asia 10 years ago, heading now?  At this point when only 30 years are left until the end of the “One Nation, Two Systems” Hong Kong, what can we learn from and avoid in Hong Kong to lure Asia regional headquarters of multinational corporations?  Lastly, I wonder what would be the way to encourage our government officials to work with self-confidence and pride like the Hong Kong Government officials. 

Minjung Theologian 8.15 71주년 단상(斷想) Ⅱ- 일본의 기독교 대학 졸업식과 여대생들

October 10, 2016

  • Minjung Theolog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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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 Dr. David Kwang-Sun Suh

8.15 71주년 단상(斷想) Ⅱ - 일본의 기독교대학 졸업식과 여대생들    우연치 않게 8월에 있은 일본의 명문 기독교대학, 동지사(同志社)대학의 졸업식 소식을 접했다. 총장의 졸업 축사를 읽고 놀랐다. 1945년, 패전한 일본은 패전 이후 경제를 복구해서 미국 다음가는 경제 강국이 되었다고 자랑하면서, 1964년에는 도쿄에서 올림픽을 개회할 수 있었고, 1968년에는 세계 제2의 경제 강국이 되었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이제 2020년에는 제2의 도쿄 올림픽을 개회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더욱 분발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동지사대학은 우리 윤동주 시인이 다닌 일본의 명문 기독교대학이다. 그리고 그 대학의 채풀 앞에 자리 잡은 윤동주 졸업생의 시비(詩碑)는 유명하다.      나는 동지사대학 총장의 2016년 여름 졸업식에서 한 식사에 기대가 지나치게 컸던 것 같다. 8월에 한 졸업 식사에 1948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인류 역사상 최초이며 최후의 원자탄 이야기도 없었거니와, 아베 정권이 말살하려고 하는 전후 평화헌법의 제9조를 말살하려는 노골적인 음모에 대해서도, 올림픽의 정신인 평화, 그리고 아시아 평화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었다. 더구나 일본이 전후 폐허에서 경제적으로 일어 날 수 있었던 것은 1950-53년 한국전쟁 특수 덕분이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이었다. 적어도 일본의 지성은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에게 평화를 이야기하고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억압의 역사를 되새기고 21세기의 아시아를 내다보는 비전이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것이 너무 한심하고 어리석게 느껴져, 통탄을 금할 수 없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배신, 지성의 배신이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8.15 해방절이 지나고 며칠 후, 나는 일본에서 온 여자 대학생들과 이야기 하는 기회가 있었다. 일본의 기독교 기관이 한국의 선교기관과 공동으로 주최한 “평화 세미나”에서 한국 할아버지 역사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임진왜란 때 부터의 한일 관계의 역사를 도표로 그려 가면서 이야기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몇 달 전 히로시마를 방문한 것에 대해서 일본 학생들의 느낌을 이야기했다. 뭐 그렇고 그런 사건이고 감동도 느낌도 없었단다. 1945년 히로시마 원자탄 덕분에 한국이 해방되었지만, 일본 사람들에게 미안한 느낌이 있다는 한국 대학생들의 “고백”에 대해서 일본 학생들은 자기네 만 피해자라고 떠드는 말을 삼가고 자기네들 조상이 한국과 중국과 아시아에 미친 피해에 대해서 더 미안해 하고 있었다. 수요일 낮 일본군 “위안부”시위에 참석하고 온 일본 학생들은, 이런 집회는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온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야 할 일이라고 흥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의 평화 헌법은 절대 바꾸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서 10억 엔인가를 내 놓고 화해하고 치유하는 흉내를 내고 있는 것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화해와 치유” 재단을 만들기 전에 “진실과 기억”을 강조하는 지식인 운동과 재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같이 했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 정부의 역사교육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데 생각을 같이 했다. 더욱이 이제 더는 핵무기가 일본에도 한반도에도 중국에도 세계 어디서도 인류사회를 위협할 수 없다는데 동의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이후, 단 한번도 쏴 보지 못한 핵무기가 왜 필요한가. 그리고 한국의 안전보장을 위해서 한국 땅에 설치하고자 하는 “사드”(THAAD) 역시 핵미사일이 날라 오기 전에는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사드”가 핵미사일을 하늘에서 터뜨리게 될 때면, 이미 핵전쟁이 시작되어서 “사드”가 있건 없건, “사드”가 작동하건 못하건, 이미 인류는, 한국사람 몇 십 몇 백만 인구가 몰살한 뒤의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 일본의 젊은이들이나 한국의 젊은이들이 살아남는 길은 핵무기를 폐기하고 평화를 위해서 공부하고 기도하고 일해야 한다고 손과 손을 잡았다. 그래서 815는 다시금 해방의 희망, 평화의 꿈을 가지게 하였다. 한,일 기독교 대학생들이 동지사대학 총장 보다 훨씬 더 의식이 있어 보였고 평화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   8.15 71周年 断想 II -日本のキリスト教大学卒業式と女子大生- コラムニスト ソ・グァンソン(徐 洸 善) 牧師 梨花女大学 名誉教授 偶然ではないかのように8月に日本の名門キリスト教大学、同志社大学の総長の卒業祝辞の記事を目にし、言葉を失った。内容は、1945年以後戦争に敗北した日本は経済復興をさせ、米国に次ぐ経済強国になったという自慢をした。それにより、1964年に東京オリンピックを計画することができ、1968年には世界第二の経済強国になったとさらに自慢げに書かれていた。また、これから2020年には第二回目東京オリンピックを開会すると言いながら、これから卒業する学生たちに向かって社会に出てさらに経済を開花させよと念入りに言った。同志社大学とは、韓国の有名な詩人である尹東柱が通っていた名門キリスト教大学である。そして、大学のチャペル前には、椅子に腰を掛けている尹東柱詩人と有名な詩碑がある。 私は、同志社大学総長の卒業祝辞を拝見していたため、8月にある卒業式により期待が大きくなっていたようだ。同年8月にあった卒業式では、1948年に広島と長崎に投下された人類史上最初で最後の原子爆弾の話、安倍政権が抹殺しようとした戦後の話や、平和憲法第9条を抹殺しようとしている話など、2020年に開かれる東京オリンピックの精神に対しての話、そしてアジア平和に対しての話が一つもなかったのである。その上、日本が戦後廃墟であったとき、1950年から1953年における朝鮮戦争特殊のおかげで経済的に立ち上がることができたことすら忘れていたようだ。少なくとも日本の知性を担う大学の卒業生たちには、平和の話をし、日本がアジア侵略と抑圧をした歴史を伝えるべきではないのか。21世紀のアジアを取り出すビジョンが見えてきたことに期待していたことが、とても情けなく愚かに感じ、痛感を覚えることしかできなかった。あの卒業祝辞は、キリスト教信仰の裏切りであり、知性の裏切りであった。 心に傷を負ったまま、8月15日の光復節を迎えた。その数日後、私は日本から来た女子大生と話しをする機会が与えられた。日本のキリスト教機関と韓国のキリスト教機関の共同で主催した“Peace Seminar in Korea 2016”にて一人の韓国のおじいさんとして歴史の話をした。米国のオバマ大統領が数ヶ月前に広島を訪問したことに対して、日本の学生たちが感じたことについて話した。その話に関しては、彼女たちには大きな印象が与えられてないと言っていた。1945年に広島に原子爆弾が投下されたことによって韓国は日本からの植民地から解放された。韓国の学生たちは、そのことについて原子爆弾の被害にあった日本人に対しては、とても申し訳ないと「告白」してくれた。それに応じ、日本人の学生たちは、自身たちの先祖が韓国、中国そしてアジアに及ぶ被害をもたらしてしまったことに対して申し訳ないと言っていた。毎週水曜日ソウル日本大使館前で行われる日本軍“慰安婦”のデモに参加して来た日本の学生たちは、「このような集会がソウルの大使館前だけでなく、世界の至るところで行うべきだ」と話していた。そして、それに付け加え「日本の平和憲法は絶対に変えてはならない」と主張していた。 日本政府が韓国の慰安婦に対して10億円ほどで慰安婦問題を和解し、被害にあった女性たちを治療する真似をしたことがとても恥ずかしいと言っていた。「和解と治癒」の財団を作る前に「真実と記憶」を強調する知識的な運動をし、それに伴う財団を作るべきという考えなどもした。さらにこれからは、もっと核兵器が日本、朝鮮半島そして中国、世界中どこでも人類社会において脅威するべきではないと同意した。広島と長崎に原子爆弾が投下された後、一度も撃たれることがなかった核兵器がなぜ必要なのか。そして、韓国の安全保障のためになぜ韓国の地にTHAADが設置されなくてはならないのか。THAADは、核ミサイルが飛んでくる前には、使用する必要がそもそもなく、THAADが核ミサイルを空に爆発させる時は、それは核戦争の始まりであり、THAADがあろうがなかろうが、作動しようがしなかろうが、すでに人類は、核兵器を廃棄しなくてはならない。韓国の若者たちが生き残る道と作るためには、平和のために勉強し、祈り、手と手を繋がなくてはならない。 こんな出会いがあったからこそ、改めてもう一度8月15日は、「解放の希望」、「平和の夢」を持とうと思わされた。韓国と日本のキリスト教の大学生たちは同志社大学の総長よりも遥かに平和に足しての意識が高く、平和に対しての情熱が強かった。 (日本語翻訳: 清永 史愉花)  

Feminist Theologian Leaders Lead Us to Travel to the World of the Unknown

June 17, 2015

  • Feminist Theolog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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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 Dr. Heasun Kim

As I write this column today, Korea’s news media is all about 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 It all started with one man who was infected by the virus after his trip to Saudi Arabia. Due to negligence of hospital staff and government officials, the virus has spread among many hospitals and patients. So far, several have died and hundreds are quarantined.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has announced that the seriousness of the disease is not such that schools have to close down but many schools have closed down. The public is reacting to the situation with fear and panic. Tens and thousands of tourists from other countries have cancelled trips to Korea. As always, fear breeds fear and it is snow-balling.   I am sure that we all have to take utmost precaution for our own health and the health of others. But when does that precaution become too much that it binds us from living a meaningful life? These days, as I watch the news and reactions of people, I am wondering whether we are dealing with MERS or are we dealing with fear itself.  Fear is a natural reaction that all living beings have when our lives are threatened. It helps us protect ourselves from danger but when our lives are only about survival from danger, it becomes the worst enemy of humanity. When we are in fear, there is no room for love, care, peace, justice, beauty, power and all the powerful things that come with living life itself. It kills off human spirit and trust, diminishing ourselves as powerless, reactionary people. Unfortunately, fear is contagious just like virus, as fear brings out the ugliest behavior of human beings. Fear is opposite of faith. When we are faced with any difficult challenge in life, we need to see whether we are reacting in fear or whether are we responding in faith. This distinction will determine the quality of our lives.  Jesus was often confronted by people’s reaction that comes from fear. Matthew Chapter 14 has a story of Jesus encountering his disciples who were stricken with fear. Jesus wanted to be alone so that he can have some quiet time to pray. He made the disciples get into the boat and go on ahead to the other side while he dismissed the crowds. He went up the mountain by himself to pray. When evening came, he was there alone but the disciples’ boat had drifted far away from the land battered by the waves. Early in the morning, Jesus caught up with them by walking on the sea. When disciples saw a man walking on the water, they were terrified and cried out in fear, “It is a ghost!”   When we are faced with an unknown reality, we often react in fear. We easily name it as “ghost.” Ghosts are beyond what we know. But is fear the most appropriate way to deal with the unknown? How much of the world do we know, anyway? What is “the world” anyway? The world that I define as “the world” only exists as “my world.” My world is different from your world. My world consists of what I know from what I have learned and experienced. I am sure that it is different from your world. So, we could be living in different worlds. The other’s world, the world that is unknown to me, can easily be one of fear to me. But is fear the only way to react to the unknown and the unfamiliar? Should they all be ghosts to me?   Those that we respect and follow as leaders have shown us a different way. For them, when faced with the unknown, it became an opportunity for growth and development. They delved deeper into the unknown, moving beyond fear with curiosity, excitement, passion and commitment. This is where new discoveries and new inventions are born. They created a world that inspired others to step into, for that’s where life’s greatest potential awaits. Life of fear is dead while life of faith is filled with unlimited possibilities and is eternal. God’s world is a world of the unknown. Miracles only happen in the world of the unknown. Won’t you travel to that unknown arena where God is leading?    리더, 미지의 세계로 여행하도록 인도하는 사람  오늘, 이 칼럼을 쓰고 있는 동안 한국의 뉴스는 온통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중동 낙타에서 시작되었다는 바이러스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다녀온 한 사람에 의해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병원, 환자, 정부의 부주의와 태만으로 지난 한달 간 메르스 바이러스가 여러 병원과 환자들에게 퍼졌다. 지금까지 20명이 죽었고 수 천명이 격리 대상이 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는 메르스로 인해 학교까지 닫을 필요는 없다고 하였지만 수많은 학교가 문을 닫았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지의 병인 메르스를 두려움과 공포로 반응하고 있다. 수만 명의 관광객들도 한국에 오는 것을 취소했다. 항상 그러하듯,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 구성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매우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의 조심스러움이 점차 과민반응으로 변하여 우리의 삶 자체를 마비시키기도 한다. 요즘 뉴스기사를 보며 우리는 지금 메르스를 주의해야 하는지 아니면 우리의 공포감과 두려움 그 자체를 주의해야 하는지를 들여다 보게 된다.  두려움이란 우리가 위협을 느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두려움으로 반응 할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 우리의 삶이 위험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의식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면 두려움은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위험한 적이 된다. 우리가 공포 속에 있을 때 거기에는 사랑, 평화, 정의, 아름다움, 힘 그리고 보살핌 등이 동시에 공존할 수 없다. 공포는 인간의 신뢰성과 영성을 죽이고 우리를 나약하고 힘없는, 반작용만 하는 존재로 만든다. 불행하게도 공포는 바이러스처럼 전염 된다는 것이다. 공포가 전염병처럼 돌 때 인간에게서는 못되고 흉한 모습만 나온다.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이다. 우리가 삶에서 힘든 도전에 대응할 때 두려움으로 반응하는지 아니면 믿음으로 반응하는지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분별이 우리 삶의 질을 가늠할 것이다.   예수님은 종종 두려움에 갇힌 사람들을 대면하셨다. 마태복음 14장에는 공포로 떨고 있는 제자들과 직면하시는 이야기가 있다. 예수님이 혼자 산에서 기도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바다로 먼저 가 배를 타고 떠나도록 하셨다. 배는 바람에 의해 육지를 멀리 떠났고 거기서 풍랑을 만났다. 기도가 끝나신 예수님은 새벽에 제자들과 합류하기 위해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있는 배로 가셨다. 물위를 걷는 사람을 본 제자들은 “귀신이다!”라고 공포에 질려 소리질렀다.   우리는 우리가 전혀 모르는 현실을 접하면 두려움으로 반응하기 쉽다. 미지의 세계를 '귀신'으로 규정하는 것은 우리가 ‘귀신의 세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가 두려움의 상대인가? 우리는 이 세계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내가 ‘세계’라고 명명하는 그 곳은 어디일까? 내가 말하는 ‘세계’란 내가 나의 지식과 나의 경험에서 터득한 세계이다.  내가 아는 세계는 상대방이 아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일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나도 두개의 다른 세계를 이야기 할 수 있다. 상대방의 세계는 내가 다 알지 못한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나는 두려움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는가? 상대방의 세계가 다 나에게 ‘귀신’인가?  우리가 따르고 존경하는 리더들은 미지의 세계, 익숙하지 않은 세계를 다른 눈으로 보고 대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세계를 접했을 때 그것을 기회로 삼아 성장과 발전의 계기로 만들었다. 호기심과 열정으로 미지의 세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거기서 신나는 새 세계를 만들어 냈다. 모든 발견과 발명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들이 만들어낸 이 새로운 세계로 다른 사람들도 초대하여 풍성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이끌었다. 두려움의 삶은 죽은 삶이고, 믿음의 삶은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영원한 세계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에게는 미지의 세계이다. 미지의 세계에만 기적이 존재한다. 당신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이 미지의 세계로 여행하고 싶지 않은가? 

Women's Leadership The Leadership of Queen Esther

June 03, 2015

  • Women's Leade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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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ran Jeon

“If I perish, I perish. “ This phrase taken from the book of Esther chapter 4 verse 16 is a well-known passage among Christians. This column aims to compare Esther’s leadership against the leadership of Haman, who tried to slaughter the Israelites captured by the Persian Empire. Prior to the comparison between Esther and Haman, it is necessary to understand the four main characters and their relationships in the book of Esther: King Ahasuerus, Esther, Mordecai, and Haman. King Ahasuerus is the core of the ultimate power of Persia. Esther became the Queen winning the king’s love and favor (2:17) and saved her people from the massacre. Mordecai appears as an advisor for Esther to save the Israelites and became an influential politician chosen by King Ahasuerus later on. Haman is a person who plans to kill the entire Jewish population for the sake of his personal revenge against the disobedience of Mordecai, a Jew.  When it comes to the analysis of the differences of Esther and Haman, it might be familiar to interpret Esther as the antithesis of Haman. This is because she plays the role of a heroine while Haman tries to kill the Israelites. However, they also have interesting commonalities in their characteristics.  Esther and Haman both play roles as demanders to the King Ahasuerus, who is the provider as a superpower. Although their requests direct different outcomes, the authority to make a decision is in the hands of the King.   Esther and Haman are both favored persons of the King. Esther is a beloved person for the King as his Queen. Haman also wins the King’s favor by becoming the leader of the officials managing the signet ring as a sign of recognition of his governing power.  In spite of their capabilities as leaders, Esther and Haman show entirely opposing leadership styles.  First, their methods of conflict resolution are polar opposites. Esther intends to SAVE her people contrary to the fact that Haman aims to KILL the entire ethnic group. Her actions can be associated with non-violent movements led by Mahatma Gandhi and Martin Luther King Jr. to bring a change against injustice. Through her own power, Esther puts rescuing her people as a priority based on her life-oriented leadership risking the chance to be murdered by Haman, Second, their core values are entirely different. The wellness and affection of her COMMUNITY moves Esther to focus on the redemption of her people. Haman, however, chooses to focus on his INDIVIDUAL realm. For example, Haman’s plan to slaughter the Jews is caused by his personal grudge against the disobedience of Mordecai. We acknowledge and recognize our leaders as great and powerful people when they think and act for the people and community in spite of personal dangers, and not the powerful leaders who think and act according to the personal grudge and greed. Thus, Esther’s leadership brings remarkable outcome and is commemorated by many people because it weighs more on the importance of the community.  Third, the two leaders show the different attitudes towards risk-taking. Esther demonstrates great COURAGE, declaring “if I perish, I perish,” taking the risk to interrupt the King by demanding her request. It might not be simple because she needs to overcome her fears of death, failure, and rejection prior to her action. However, when the King finds out Haman’s plot, Haman does not attempt to convince the King to justify his plan. Rather, he BEGS for his life.   Last but not least, the difference between two was their character. Esther is willing to FORGIVE, and Haman decides to take REVENGE.   After fasting for three days, Esther invites Haman, the enemy of the Jew, to feast with her. Isn’t that interesting? Her body was exhausted and needed to be restored. If I were Esther, I would not like to share my time and space with him even once, but she did it twice. Her invitation was not a plot to put Haman to death. I would like to interpret this as her generous gesture to give an opportunity for him to repent. This is her hospitality toward Haman.  Nevertheless, Haman does not show any compassion or generosity towards the Jews, the ethnic and religious minority of that time. Rather, he allowed racism to feed his anger toward Mordecai and hatred against all the Jews. Esther’s love for the life of the community, braveness, and willingness to forgive still inspire people who are living in the 21 century. Her leadership as the Queen of Persia led to writing a new path of the history of the Israelites.  Was Esther’s leadership just one hero’s historic accomplishment from the Bible? Can we connect her actions to our lives today? How shall we apply her leadership into our lives? Please, carefully take a look at your neighbors. Is there a person who suffers from life-threatening experiences by the decision of the government, high tax rates, the expensive cost of medical care, and the danger of deportation due to their immigrant status? This is an opportunity to choose to stand by the people who are suffering. We should show our care for the community, extend our braveness, and be willing to raise our voice for justice.  Is there a person who seems like an enemy? This is a definite sign to open our hearts to invite them to understand the differences not as a problem but as the opportunity to fertilize the depth of our mind and spirit. Let us work for the community and take action for justice. That will lead us to be a great leader who makes a new history for our time. 여왕 에스더의 리더십  “죽으면, 죽으리라.” 기독교인이라면 익히 들었을 에스더 4장 16절에 나오는 에스더의 당찬 각오의 말이다. 이번 칼럼에서 에스더서에 드러나 있는 에스더의 리더십에 대해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서문을 열어본다. 이스라엘 민족을 말살하려는 하만의 리더십과 에스더의 리더십을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하겠다.  에스더와 하만의 리더십을 비교하기 앞서, 우선 에스더서에서 등장하는 주요인물, 즉 아하수에로 왕, 에스더, 모르드개, 하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아하수에로 왕은 페르시아를 다스리는 막강한 힘을 가진 왕이다. 에스더는 왕의 사랑과 호의를 독차지하는 페르시아의 여왕이며, 이스라엘 민족을 대량학살의 위협에서 구해내는 인물이다. 모르드개는 부모가 없는 에스더를 아버지 처럼 키워준 에스더의 친척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해 에스더에게 조언을 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하만의 죽음 이후, 왕의 선택을 받은 영향력 있는 정치가가 되었다. 하만은 이스라엘 사람인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하지 않은 불순종에 분노하여 지극히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이스라엘 민족 전부를 죽이려고 계획하는 인물이다.  에스더와 하만의 차이점을 분석한다고 하면, 에스더와 하만이 극단적으로 반대의 성향을 가진 것으로 보는 해석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왜냐하면 에스더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는 영웅이고, 하만은 이스라엘 백성의 대량학살을 주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인물에게서도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에스더와 하만은 모두 막강한 힘을 가진 아하수에로 왕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는 사람들이다. 서로 요구하는 목적과 결과는 다르지만, 결정권한은 왕의 손에 있었다. 또한 에스더와 하만 둘 다 아하수에로 왕에게 총애를 받는 인물이었다. 에스더는 여왕으로서 왕의 사랑을 받고 있고 하만은 왕의 인장반지를 관리하는 정치적 수장으로서 왕의 신임을 받았다. 이렇게 이 두 사람 모두 리더로서 자질을 갖춘 지도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에스더와 하만의 리더십은 서로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첫째, 이 둘의 리더십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에서 반대의 성향을 나타낸다. 에스더는 자신의 백성을 살리려는 의도를 보이고, 하만은 특정 민족 전체를 몰살하려고 든다. 에스더가 취한 방법은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님이 부정의에 대항하여 비폭력운동으로 대응하였던 자세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에스더도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여 하만을 처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스더는 생명존중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자기 민족을 살려내는 것이 그녀의 최우선 과제였다.  둘째, 에스더와 하만의 리더십은 그들의 핵심 가치에서 큰 차이를 드러낸다. 공동체의 안녕을 중시하고 자신의 민족을 사랑했던 에스더의 마음은 그녀의 백성들을 구하는데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하만은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하만이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살해하려고 계획했던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불복종 한 것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세계를 변화시킨 위대한 인물’로 인정받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모두 개인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과 공동체 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만약 그들이 개인적인 원한과 탐욕에 사로잡혀 생각하고 행동한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은 위대한 리더로서 인정받지 못 했을 것이다.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 에스더의 리더십이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공동체의 중요성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에스더와 하만은 위험을 감수하는 상황에서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에스더는 왕에게 자신의 요구를 표현하기 전에 목숨을 걸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이야기하며 대단한 용기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에스더의 행동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에스더는 그녀의 용감한 행동 이전에, 그녀 앞에 놓여진 죽음, 실패,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스스로 이겨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만은 어떠했는가? 그는 아하수에로 왕이 자신의 계략을 알게 되었을 때, 왕에게 자신의 계획을 합리화하기 위해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삶을 구걸하기 바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성품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에스더는 기꺼이 용서하려고 하고 하만은 복수심에 불타오른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자. 에스더는 3일 동안 금식한 후, 이스라엘의 대적자 하만을 잔치에 초대했다. 흥미롭지 않은가? 분명 에스더는 3일간의 금식으로 몸은 지칠 대로 지쳤을 것이고 육체적인 회복이 필요했을 것이다. 내가 만일 그 상황의 에스더였다면 나의 시간과 공간을 하만과 나누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에스더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하만을 자신의 잔치에 초대하였다. 나에게는 이러한 에스더의 초대가 결코 하만을 죽음으로 몰아가기 위한 계략으로 보이지 않는다. 에스더가 하만을 두 번이나 자신의 잔치에 초대했었던 이유에 대해 나는 하만이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회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에스더가 하만에게 배푼 관대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만은 어떠했는가? 그에게서는 종교적인 약자이며 소수 민족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관대함을 눈 씻고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하만은 자신의 개인적인 원한을 바탕으로 특정 민족에 대한 차별과 혐오감으로 발전시켰다.   에스더가 보여준 공동체에 대한 사랑, 용기, 용서하고자 하는 의지는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영감을 준다. 페르시아 여왕 에스더의 리더십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데에 큰 공헌을 하였다.  혹시 에스더의 이야기를 우리와 전혀 관련 없는, 단지 한 여성 영웅의 이야기 혹은 한 영웅의 역사적인 업적에 관한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는 에스더의 리더십을 우리 삶 속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들을 유심히 살펴보길 부탁한다. 혹시 내 주위에 정부의 부당한 결정이나 높은 세금, 감당하기 힘든 의료비, 불법체류로 인한 강제추방의 위험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이웃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에스더가 보인 리더십 처럼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정의를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용기와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혹시 당신에게 적대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다름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라는 강력한 신호로 받아들여 보자. 우리가 주변의 이웃들에게 에스더의 리더십을 발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시대에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Bible Scholar Here I Am!

May 20, 2015

  • Bible Scho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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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v. Dr. Yani Yoo

1 Samuel 3:1-9Have you ever worked and lived with your boss in one place? Have you been called by your boss in your sleep? If this is a dream, it must be a nightmare. In fact, this really happened to Samuel in the Bible. This kind of thought would naturally come to mind, “What is he thinking that he calls me in the middle of night? What will he ask me to do? It is exhausting.” Would Samuel have responded that way? Samuel is the son whom Hannah received from God after long barrenness. Hannah kept her promise that she would give her son to be God’s servant for as long as he lives. So Samuel grew up in God’s house where the priest Eli is serving. Samuel lived and worked with his boss in one place.One night, the boy Samuel is asleep. God calls out, “Samuel, Samuel!” Then Samuel runs to Eli and says, “Here I am. What do you want?” “I didn’t call you,” Eli answers. “Go back to bed.” The same thing happens three times. Then Eli finally realizes that it is God who is speaking to Samuel. So he says, “Go back and lie down! If someone speaks to you again answer, ‘I’m listening, Lord. What do you want me to do?’” Not long after, God calls out Samuel’s name again. He answers as Eli instructed. God tells him what will happen to Eli’s house. This incident can be seen as the moment where God officially chooses Samuel. Later, Samuel as the last judge, prophet, and leader plays an important role in the transition of the ancient Israel from the judges period to the kingship system. God gave an oracle, not to Eli the priest or his sons who could inherit priesthood, but to Samuel who was a helper at the temple. Although Samuel “did not even know God” (3:7), God continued to call out Samuel until he finally listened to God. This essay attempts to suggest why God chose him. The narrator begins with the story of Hannah, Samuel’s mother, and leads readers to anticipate Samuel as the hero of future events. The report that Eli’s sons misbehaved (2:12~17) also prepared Samuel as the leader of the next generation. The narrator, however, did not tell the readers of Samuel’s character and potentials. We, as readers, use our imagination and attempt to find clues from Samuel’s actions. That night, as soon as God called out Samuel’s name, he answered right away, “Here I am.” He also ‘ran’ (3:5) to Eli. Three times he got up from his sleep but did not complain. As if it happened often before, Samuel was not surprised and each time he simply went to his boss. We can even suspect that Samuel received tough training and could have been considered exploited in work standards. In many countries around the world students, not janitors, clean their schools. They sweep, mop, scrub the floor, take the garbage to the dumping ground, polish the windows, and clean the restroom. This can be a helpful discipline. The fact that Samuel slept near the sacred chest in God’s house indicates that he did not enjoy a luxurious lifestyle (3:3). The descriptions that he got up and ran to his boss several times in the middle of night and slept in God’s house reveal that these actions came from daily discipline. Samuel also did not talk against or behind his boss’ back. It is not hard to find those who talk behind their boss and complain about their work. How easy to respond that way! But Samuel did not. When his parents came to see him once a year he could have done so insisting to go home with them. Understandably, the narrator seemed to intend describing Samuel positively. In today’s global economic crisis, young people have a hard time getting jobs. They often have part-time jobs, have small incomes, live in poor housing, and find it difficult to dream about their future. Despite that, our biblical story shows the kind of young person whom God seeks. Several times God called out Samuel who served his boss like a servant, lived in poor condition and did not even know God. Young people often hold explanations that leave themselves powerless. They call themselves too young, too poor, too unable, not enough, and are busy seeking their boss’ approval. Isn’t it amazing that God calls young people to be God’s partners for the future plan? If the young are now going through tough times, they can consider it as training. If the boss is a difficult person, instead of blaming him or her, they can learn something valuable and make it a chance to grow. The training and experiences the young are going through help them prepare for their prompt response when they hear God’s voice, saying, “Here I am. What do you want?” 예, 저 여기 있어요(삼상 3:1-9)   보스와 같은 공간에서 살며 일한 적이 있는가? 한참 자고 있는데 한밤중에 보스에게서 부름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직장인이라면 이 상황은 꿈이라 해도 악몽일 것이다. 성경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사무엘에게 벌어졌다. 이럴 때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이 한밤중에 도대체 무슨 일을 또 시키려고 할까? 정말 힘들다.’ 사무엘도 그렇게 반응했을까? 사무엘은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던 어머니 한나가 기도를 하고 얻은 아이였다. 한나는 아들을 하나 허락해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을 지키기 위해 사무엘을 성소에 맡겼다. 이렇게 사무엘은 어린 시절부터 성소에서 자랐다. 그곳은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는 실로의 성소였다. 그러니 사무엘은 평생 보스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살고 일한 셈이다. 어느 날 밤에 소년 사무엘이 성전에서 자고 있는데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새벽녘이었다. 사무엘은 엘리가 부르는 줄 알고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도로 가서 누워라.” 이 일은 세 번이나 벌어졌다. 그제서야 엘리는 주님이 사무엘을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고 사무엘에게 일러주었다. “누가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해라.” 과연 조금 후에 다시 주님이 사무엘을 부르는 소리가 있었고, 사무엘은 엘리가 일러준 것처럼 대답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엘리의 집에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알려주셨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사무엘을 공식적으로 선택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사무엘은 후에 마지막 사사요, 예언자와 지도자로서 활약하고, 고대 이스라엘이 사사시대에서 왕국시대로 넘어가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엘리 가문의 일을 엘리 제사장이나 사제직을 상속할 수 있는 아들들에게 알려주신 것이 아니라 성전 일을 돕던 어린 사무엘에게 알려주셨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지만’(3:7). 하나님은 사무엘이 끝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사무엘아, 사무엘아!”고 계속 부르셨다. 이 글은 하나님이 사무엘을 택하신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보려는 것이다. 물론 화자는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독자로 하여금 사무엘을 미래 사건들의 주인공으로 기대하게 하였다. 또한 엘리의 아들들이 행실이 나빴다는 보고(2:12~17)는 사무엘이 차세대 리더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했다. 그러나 화자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바로 어린 사무엘의 “됨됨이”이다. 우리는 독자로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사무엘의 행동에서 하나님이 사무엘을 택하신 이유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날 밤 사무엘은 ‘사무엘아!’하고 부르는 소리에 얼른 일어나 “예!”하고 대답하며 ‘달려갔다’(3:5). 세 번이나 자다가 일어나 보스에게 가면서도 불평이 없었다. 마치 전에도 자주 그랬던 것처럼 놀라지도 않고 매번 보스에게 간다. 우리는 사무엘이 혹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았고, 어린이 노동착취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할 수 있다. 사실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는 학교 청소를 어른 청소부가 아니라 학생이 직접 한다. 마루바닥을 쓸고 닦고 윤을 내고, 쓰레기를 쓰레기장에 버리고, 유리창을 닦고, 화장실 청소를 한다. 이것은 좋은 훈련이 될 수 있다. 사무엘이 주님의 궤가 있는 성전에서 잠을 잤다는 기록(3:3)으로 미루어볼 때 사무엘의 생활환경이 그리 편했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한밤중에 보스가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몇 번이고 달려가고, 성전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오랜 일상과 훈련에서 나왔음을 암시한다. 사무엘은 또한 보스에 대해 뒷담화가 없다. 보스에 대해 뒷담화를 하고 일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게 반응하기가 얼마나 쉬운가! 그런데 사무엘은 부모님이 일 년에 한 번씩 실로 성소를 방문할 때 보스의 험담을 하거나 울고 떼쓰며 집에 가겠다고 했을법한데 그런 묘사가 없다. 물론 화자가 사무엘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려는 의도는 다분히 있지만 말이다. 오늘날 세계의 경제 위기로 젊은이들은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 열악한 상황에서 지낸다. 일은 아르바이트 수준이라 수입이 적고, 주거 환경도 불편하고, 그렇게 살다 보니 미래를 꿈꾸기 조차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오늘 성서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찾으신 사람은 바로 그런 젊은이였다. 시종처럼 보스를 섬기며 불편한 환경에서 지내고 하나님도 모르는 어린 사무엘을 몇 번이고 부르며 찾으셨다. 젊은이들은 종종 스스로 힘을 빼는 여러 설명을 가지고 있다. 어리다, 가난하다, 무능하다, 부족하다고 하면서 보스들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하다. 이상한 것은 하나님은 바로 그런 젊은이들을 찾아가 하나님의 미래 계획에 동반자로 부르신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현재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훈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법하다. 어려운 보스라고 탓할 것이 아니라 배울 점을 찾고 성장의 기회로 여길 수 있다. 고생하고 단련 받은 시간은 언젠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달려갈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Women's Leadership The Power of Gathering Women

April 08, 2015

  • Women's Leade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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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elly Lee

There’s a song I really enjoy by Sweet Honey in the Rock called, “The Women Gather.” The chorus of the song goes like this: “The women gather crying tears that fill a million oceans. It doesn't matter where you're living. The women gather.” Other than Sweet Honey in the Rock’s harmonious a cappella singing, these lyrics move me into a deeper revelation. Despite the million tears that women cry from the social and personal ills in life, the message is ultimately a hopeful one? The image of women coming together through it all. Why do women choose to come together? What brings them together in times of need? What makes women’s gatherings so powerful?When women gather, it allows us to tell our stories.Poet Adrienne Rich once said, “When a woman tells the truth she is creating the possibility for more truth around her.” The women’s space is a safe space. It welcomes you to be who are you and declare your truth in a world where it still tells us our truth is not relevant nor is it legitimate. Because our truths are so unheard and un-believed, when one person shares her truth, it unlocks a sense of healing and belongingness bringing revelations of more truths to be told. I had the opportunity to experience this on an international and governmental scale this past March when I attended the United Nation’s 59th Annual 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 as a United Methodist Women delegate.  C.S.W. is the principle global intergovernmental body in the U.N. dedicated to the promotion of gender equality and the empowerment of women (www.unwomen.org/en/csw). Once a year, activists from all over the world gather in New York City to advocate for their cause and keep their governments accountable. With over 1100 organizations and 8600 individuals registered this year, this gathering showed the passion of women for equality and justice in their personal and political lives.  The importance of dialogical conversation between governments and grassroots women proved to be critical in shaping the world’s legislation. The source of power came from women voicing their realities together on a larger platform. The women who organized and shared were articulate, intelligent, bold, and… real. One example was of a fellow UMW delegate Esperanza Cardona of Honduras. Her organization helps mobilize the rural and peasant women to fight for their right to land and food. She spoke about “food sovereignty” being a human right as opposed to “food security” which can often place trade concerns over the concerns of the people. Her real life example of this subtle difference helped all of us engaging with her to understand the thorough need to push for this type of change in language and implementation in the larger political decision-making spectrum. The testimony of her life’s work also forced those of us listening to examine our own governments’ role in food security versus food sovereignty.  When women gather, we create visions and take action. A more personal moment for me was listening to a group of panelists talk about the painful separation of one nation, one family and one blood?my mother country, Korea. The session entitled, “Walking the UNSC1325 Talk: Women Cross Most Militarized Border in the World” addressed the desperate need for a peace treaty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My heart panged as I was reminded that Korea is the only country to be divided by a ‘ceasefire’ separating millions of family members who may never have the chance to reunite in their lifetime. In her presentation, eco-feminist theologian Chung Hyun Kyung, shared a poignant imagery of President Park Geun-hye and Supreme Leader Kim Jong-Un hugging at the DMZ like mother and son. She finished with a hopeful message to those in the North declaring, “you are not my enemy, you are my family.”  Moved by her talk, I realized that in order to achieve this vision, Korean women must first begin to empathize with other Korean women. Whether in the north or in the south or in diaspora, we must be able to see this vision together.The panelists further expressed why women must intervene in the peace process in Korea. They called for implementing peace education into all school curriculums and for governments to take up stronger commitments and take real action. They also announced their own personal commitment to walk across the DMZ with thirty other international women to assert peace talks and symbolize true reunification. One moment we were reviewing the implementation of the UNSC1325 and in another we were wiping our eyes in a moment of solidarity we felt as sisters carrying each other’s pain. The tears were more than about the schism of Korea. The 70 years of a divided Korea struck so many of us in that room because it spoke to human brokenness and the silent suffering of unresolved conflicts. In that moment, it was as though the tears have melted away any barrier of difference left between us. The sharing of personal sufferings ties our humanness together. It brings us out beyond ourselves and into the lives of another. It diffuses hatred and fear and reinstates the truth of love and life. Human connection helps us to build a new and inclusive reality together. It helps create visions. The old can no longer exist because we have heard a truth that has now also become our truth. Once we are touched by this newness, we become motivated to do something about it. When women gather, we build our courage of faith. When the women heard the news about Jesus’ crucifixion, they gathered to be with him. They were there to follow him. They were there upon his death, and they were there in his burial. They planned and they organized in the midst of their deep mourning. Imagine their dismay when they saw that the tomb was empty. They were met with a surprise new reality and for a moment they were left without Jesus. The women’s response is the most challenging yet. Matthew 28:8 states, “So they left the tomb quickly with fear and great joy, and ran to tell his disciples.” In a time where women were given no authority, they spoke out against disbelief, helplessness, and despair and shared their witness account. Their faith moved them to remember Jesus’ promise and their courage propelled them to share the good news that he was indeed alive. When is the last time you gathered among women? Women’s gathering is powerful because, often in our toughest struggles, our faith in God is the source that keeps us moving forward. The courage comes from the hope of resurrection of life. It is the hope in knowing the Jesus will come and that Jesus is with us now, and Jesus draws us toward life. It is in acknowledging the power is Christ within us and that we are not alone in this journey. We women will not rest until peace is achieved. We are co-participants of a worldwide movement restlessly en route to the fullness of humanity. This movement is interwoven of life stories and experiences from all generations, all cultures, all religious backgrounds, all walks of life, and from all places of this world. We, you, I am powerful because no matter where we are, we are connected as women who share one journey. =========================================함께하는 여성의 힘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 중에 스윗 허니 인 더 락의 '여성이 모여(The Women Gather)'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의 후렴은 이렇게 시작된다. “여성이 모여 그 눈물이 바다를 이뤄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 상관 없어요. 여성이 함께 모여요.” 아카펠라로 노래하는 스윗 허니 인 더 락의 아름다운 화음을 듣는 것도 좋지만 이 노래의 가사는 우리에게 화음보다 더 깊은 메시지를 들려준다. 개인적, 사회적 삶의 아픔 속에서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함께 연대하는 여성들의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궁극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여성들은 함께 모이려 할까? 어떤 필요가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여성들의 모임을 그토록 힘있게 만드는가?  여성이 모일 때, 서로의 삶을 이야기한다. 시인 아드리안 리치는 “한 여성이 진실을 말하면, 그 주변의 더 많은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함께 모여 창조하는 공간은 안전하다. 우리는 이 공간에서 우리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으며 이제껏 여성들의 진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세상을 향해 우리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세상은 우리 여성의 진실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에 한 여성이 자신이 경험한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 할 때 우리는 마음의 치유를 받고 소속감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도 진실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나는 지난 3월, 59회 유엔 여성지위위원회(the 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 이하 CSW)에 연합감리교회의 대표로 참석하면서 여성들이 함께 모여 진실을 나눌 때에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CSW는 양성평등과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세워진 국제 기구로서 전 세계의 활동가들이 모여 자신들이 활동에 대해 나누고 서로 연대하기에 힘쓰는 만남의 장이다. 1100개 이상의 단체와 8600여명의 개인 참가자가 등록한 올해 모임은 수많은 여성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평등과 정의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전세계적 입법 활동에 있어 각 국 정부와 시민단체 여성들간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며 이러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여성들이 더 큰 발표의 장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때 나타났다. 자신의 삶을 나누었던 모든 여성들은 한결같이 분명했고, 현명하고, 용감했으며 진실했다. UMW의 대표로 참가한 온두라스의 에스페란자 칼도나(Esperanza Cardona of Honduras)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칼도나가 일하는 단체에서는 농촌지역의 여성들이 땅과 식량에 대한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역에 대한 우려를 민중의 고충보다 더 우선 시 하는 '식량안전'과는 대조적으로 인간의 권리로서 '식량주권'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칼도나의 생생한 삶의 경험에서 나온 증언은 청중으로 하여금 미세한 언어의 차이와 더불어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케 하였고 이를 더 큰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시켜야 할 문제로 인식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칼도나의 이야기는 식량안전과 식량주권 사이에서 우리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점검하게 해 주었다.  여성이 모일 때, 비전을 만들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시간은 나의 모국 한국이 한 나라, 한 가족, 한 혈육으로서 가슴 아픈 분단 상황 놓여있는 것에 대해 공개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UNSC1325 담화: 국경을 넘는 여성'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션에서는 남북간 평화조약의 필요성에 대해 대해 논의하였다. 패널 토의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것과 그로 인해 살아생전에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없는 이산가족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여성 생태신학자인 정현경 박사는 강연 중 가슴 저미는 한 이미지를 나누었다. DMZ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제1위원장이 마치 어머니와 아들처럼 서로를 안아주는 장면이었다. 정현경 박사는 북녘의 사람들을 '나의 적이 아닌 나의 가족'이라고 이야기하면서 통일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로 강연을 마무리하였다. 나는 이 강연을 통해 이러한 통일의 비전이 현실화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남한의 여성들이 또다른 한국인 북한의 여성들을 마음으로부터 공감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이든 북이든 다른 어떤 곳에서든 우리는 이 비전을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어서 패널들은 왜 여성들이 한국의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하는 지를 역설했다. 그들은 전 교과과정에 평화교육을 도입해야 하며 정부가 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통일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진정한 평화적 담화와 진정한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30명의 여성들과 함께 DMZ 휴전선을 넘어 걷기 운동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계속해서 우리는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UNSC1325 실행 상황에 대해 검토하였고 서로의 아픔을 통감하는 자매로서의 연대감을 느낄 때마다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가 흘린 눈물은 단순히 한반도의 분단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국의 70년 분단의 역사가 그 자리에 모여 있었던 우리 모두의 가슴을 흔들었고 우리의 눈물은 인간 내면의 깨어짐과 풀리지 않는 갈등에서 오는 무언의 고통을 고스란히 대변해 주고 있었다. 그렇게 함께 눈물을 흘리는 순간, 그 눈물이 서로의 다름에서 오는 어떠한 장벽들도 녹여버리는 듯 했다. 인간은 서로의 아픔을 함께 나눌 때에 한 공동체로 연결된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를 개인의 삶의 자리를 뛰어 넘어 타인의 삶으로 인도한다. 이러한 나눔은 미움과 두려움을 녹이고 사랑과 생명의 진리로 우리를 회복시킨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기적 관계는 우리로 하여금 함께 새롭고 폭넓은 현실과 비전을 세우도록 돕는다. 이전의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들어왔던 진실이 바로 지금 우리의 진실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진실이 우리의 마음에 울리는 즉시 이를 실천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이 모일 때, 믿음의 용기를 갖는다.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여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기 위해 그의 곁을 지켰다. 예수님께서 죽임 당하실 때까지 여인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그의 장례를 지켰다. 깊은 슬픔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계획대로 진행하며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랬던 여인들이 빈 돌무덤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당황했을지 상상해 보라. 그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여인들을 홀로 남겨두고 떠나셨다는 두렵고 놀라운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여인들의 반응은 참으로 놀라웠다. 마태복음 28장 8절에서 진술하기를, 여인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했다고 전한다. 여성들에게 어떠한 권위나 힘도 없었던 시대에 그들은 불신과 좌절, 그리고 절망을 이겨내고 부활을 증거하였다. 이들의 굳건한 믿음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셨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게 했고 이들의 용기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 나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한 것이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여성들과 함께 모인 것은 언제인가?  여성의 모임은 강인하다. 우리가 가장 힘든 시련을 겪는 중에도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힘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용기는 부활에 대한 소망에서 나온다. 이 소망은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과 예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부활의 소망 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시는 것을 깨닫고 이 긴 삶의 여정에서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 여성들은 평화를 얻기까지 쉬지 않고 일할 것이다. 우리는 인류의 온전함을 위해 일하는 세계적인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이 운동은 모든 세대, 문화, 종교, 삶의 자취, 세계 곳곳의 삶의 이야기와 경험들이 서로 서로 엮여있다. 같은 여정을 향해 함께 걷는 여성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어느 곳에 있든지 강인하고 강력하다.